오래간만에 쓰는 영화 포스팅 이네요...
한국전쟁 실화를 바탕으로
픽션을 가미한
한국형 블랙호크다운 인천상륙작전이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에 이재한 감독은 이미 한국전쟁 영화
포화속으로를 만든적이 있습니다......
빅뱅에 탑이 주연으로 나왔었죠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간략한 스토리는......
6.25가 벌어지고 한달만에 낙동강 지역을 제외한
한반도 전역이 북한군 손에 넘어가자
연합군 최고 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전세를 한번에 뒤집기 위해
모두가 반대하는 인천에 상륙작전을 펼치려 하는데
이 작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뢰에 위치 확보가 있어하는데
맥아더는 해군 첩보부대를 만들어
인천에 상륙전
기뢰에 위치를 알아오라고 명령하는데...
과연 해군 첩보부대는
아무 이상 없이
이 임무를 완수할수 있을지...........
이미 역사적 사실로는
이 작전에 성공 여부는 밝혀 져있죠
하지만
과연 주인공중 누가 살고 누가 죽을지가
관객들에게 가장 궁금할거 같은...........^^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잠깐 글로 적어 보자면.....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
북한은 남한을 침공하게 됩니다..
무기나 여러가지가 열세했던 남한보다
북한은 소련제 무기들로 아주 쉽게
3일만에 서울까지 함락하게 되고
단 한달만에 마산 일부분과 부산을 제외한 전 지역이
북한군 손에 넘어가게 됩니다...
결국 UN군은 이 전쟁을 북한이 일으킨
침략전쟁으로 단정하고
남한군을 도와주기 위해
부산으로 오게 됩니다...
UN군 총사령관은 너무나도 유명한 멕아더 장군이였으며
맥아더 장군은 전면전 보다는
상륙작전을 기반으로
북한군 보급로를 단번에 끊어 버리고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을 수복하여
적에게 심리적 타격을 주기위해
인천에 상륙작전을 펼치기로 합니다........
인천 상륙작전........작전명
크로마이트-Chromite 작전
번역하면 크롬-철광 작전정도가 되겠네요
왜 그렇게 지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작전은 큰반대에 부디쳐
무산될 위기에 쳐해지는대
반대파에 의견은
인천으로 들어가는 수로가 너무좁고
조수간만의 차가 너무 심해
군인들과 물자를 내려놓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에서 큰 반대를 하게 되지만
결국 맥아더 장군은 그런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인천 상륙작전을 펼치게 됩니다........
이 작전을 성공 시키기 위해
맥아더 장군은
다른 중요한 작전들도 펼치게 되는데
첫번째가 이영화에 모티브가된
해군 첩보부대를 이용하여
인천을 장악하고 있는
북한군 병력 규모등을 알아오라는
X-RAY 작전
이 작전을 간략히 설명해 드리자면
1950년 8월 13일
우리 해군은
맥아더 장군의 요청에 따라 함명수 전 해군참모총장이
해군 첩보부대 만들게 됩니다
당시 해군 정보국장이었던 함명수 전 해군 참모총장은
김순기 중위, 임병래·장정택 소위를 팀장으로 한 총 3개팀
17명으로 구성된 첩보대를 구성하게 됩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인천지역
북한군 배치 현황
보급선과 보급현황
해로의 기뢰매설 여부
상륙 지점의 지형
인천항의 안벽 높이
밀물과 썰물 때의 해안 길이
북한군의 방어진지 상황 등을
파악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으며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때로는 월미도 해안도로 보수공사의 인부로 일하며
이곳 해안포대의 위치와 해안포의 개수를 살리고
또 때로는 인민군 복장을 하고 나가면서 까지
인민군 수를 체크해가며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해 나갑니다
이렇게 파악한 정보는 영흥도의 첩보부대 기지를 통해 맥아더 사령부로
이상없이 전달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이틀 전인 9월 13일 첩보부대에 철수 명령이 떨어지게되고
몇가지 남은 임무를
마저 끝내기 위해
남아있던 임병래 소위와 홍시욱 하사 등 일부 대원은
북한군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결국 수세에 몰리게된
임 소위와 홍 하사는 작전을 하루 앞둔 시기에 자신들이 포로로 잡히면
정보가 누설될 것을 우려해 휴대하고 있던 총으로 자결하고 맙니다.....
영화와 내용이 조금 다르죠.........ㅠㅠ
또다른 2번째 작전은
북한군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만든
가짜 상륙 작전
장사상륙잔전입니다
인천상륙작전 직전
중고등학생들로 이루어진 작전입니다
772명에 학도병들이
영덕군 장사리로
보내지게 되어
포항과 영천 사이에
국도 제7호선을 봉쇄하고
북한군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혁혁한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출발할 당시 학도병들이 탔던배는
태풍에 의해 좌초되었고
뒤이어 구출선을 보냈지만
학도병 대부분은
북한군 2개 사단 정예부대에의해 전사하고 맙니다
위 2개의 작전에 의해
인천 상륙작전은 더큰 성과를 이루게 됩니다.........
------------------------------------
6.25전쟁은
1950 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 2일 동안 벌어진 전쟁으로
- 한국 국방부와 군사 편찬 연구소의 자료 -
한국군 사망자 13만 8천 여명 , 부상자 45만 여명, 실종자까지 모두 포함하면 60만 9천 여명
북한군 사망자와 부상자 52만 여명, 실종자까지 모두 포함 80만 여명
유엔군 사망자 5만 8천 여명 , 부상자 48만 여명, 실종자와 포로 포함 총 54만 6천 여명
중공군 사망자 13만 6천 여명 , 부상자 20만 8천 여명, 실종자와 비 전투 사상자까지 모두 포함 97만 3천 여명
남한 민간인 사망자 24만 5천 여명, 학살된 민간인 13만 여명, 부상 23만 명, 납치 8만 5천 여명, 행방불명 30만 3천 여명
그러나 한국 전쟁 유족회와 학자들은 학살된 한국인만 1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953년 북한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북한 민간인 사망자는 28만 2천명, 실종자 79만 6천 여명 으로 발표 했습니다
이들 자료에 의하면
당시 남북한 전체 인구의 1/5이 피해를 입었으며
개인별로 보면 한 가족에 1명 이상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UN군 참전국 - 16개국
미국 - 5,720,000명 참전(전사 54,246명,부상 103,284명)
영국 - 57,000명 참전(전사 729명, 부상 2,583명)
호주 8,047명 참전(전사 304명,부상 1,040명)
캐나다 - 5,579명(전사 312명, 부상 1,212명)
네덜란드 - 5,322명 참전(전사 120명,부상 645명)
프랑스 - 3,421명 참전(전사 262명, 부상 1,008명)
뉴질랜드 - 5,144명 참전(전사 23명, 부상 79명)
필리핀 - 7,420명 참전(전사 112명, 부상 229명)
남아프리카공화국 - 826명 참전(전사 34명)
터키 - 14,936명 참전(전사 741명, 부상 2,068명)
태국 - 12,845명 참전(전사 129명, 부상 1,139명)
그리스 - 10,581명 참전(전사 196명, 부상 543명)
벨기에 - 3,498명 참전(전사 101명, 부상 349명)
룩셈부르크 - 89명 참전(전사 2명, 부상 13명)
이디오피아 - 3,518명 참전(전사 121명, 부상 536명)
콜롬비아 - 5,314명 참전 (전사 131명, 부상 448명)
의료 지원국 - 5개국
덴마크 병원선 - 1척
인도 - 야전이동병원부대
이탈리아 - 적십자 병원부대
노르웨이 - 이동외과병원부대
스웨덴 - 야전병원부대
기타 물자 지원국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 브라질
칠레,코스타리카 , 쿠바 , 에쿠아도르
엘살바도르 ,아이슬랜드 ,이스라엘
레바논 , 라이베리아 , 멕시코
니카라구아 , 파키스탄 , 파나마
파라과이 , 페루 , 베네수엘라
-----------------------------------------------------------------------------
영화 인천상륙작전 평점은
7.5점 입니다....
아픈 우리나라 역사를 기반으로 괜찮은 전쟁영화를 만들었지만
아직 갈길이 멀어 보이는것 또한 사실이였습니다
조금더 잘 다듬고 신경써서 제작한다면
최고에 한국 영화가 만들어 질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로요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산행 (0) | 2016.08.15 |
---|---|
수어사이드 스쿼드 (0) | 2016.08.04 |
인디펜던스데이 : 리써전스 (0) | 2016.07.04 |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 (0) | 2016.06.10 |
런던 해즈 폴른 (0) | 2016.06.08 |